제주 경제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제주도정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제주도정은 중앙정부의 국정과제와 5극 3특의 국가 균형 성장 정책을 활용한 성장전략을 추진함으로써 제주의 지속가능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발표된 제주 성장전략에도 AI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부합하는 전략과제를 바탕으로 제주도의 미래 성장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향토산업의 고도화, 지역 상권의 경쟁력 강화, 취약계층 지원 등이 성장전략에 포함되어 있어 지역사회 전반의 균형 있는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제주도정의 성장전략과 과제들이 국정과제와 연동되어 마련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AI 전환과 탄소 중립은 미래 산업 질서를 좌우할 핵심 의제이지만, 제주도와 같은 지자체가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혼자서 추진하기 힘든 분야이다. 마침 중앙정부는 3특 정책에 의해 제주도와 같은 지방을 대상으로 예산 지원 확대를 예고한 만큼 제주가 감당해야 할 재정 부담이 줄어들 수 있어 긍정적이다. 5극 3특의 지방 균형 성장 정책에 의해 제주의 자치 분권의 역량이 강화된 점도 의미가 크다. 제주도정이 자치입법권을 잘 활용하면, 미래 산업의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새롭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법·제도 위에서 혁신적 기업과 창의적 인재들에 의한 도전적인 사업이 추진됨으로써 산업 변방의 제주도가 미래 산업의 코어로 변모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 경제의 성장 전망이 밝아진 것은 아니다. 제주의 혁신 생태계 부재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시장실패의 결과이며, 이는 적극적 정책 개입을 요구한다. 관건은 칡뿌리처럼 얽혀 있는 제주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개선에 제주도정의 성장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특히, 제주도정이 경쟁우위 선점에 유리한 미래 산업을 발굴하고 키워낼 수 있을지가 핵심 당면 과제이다.
현재 제주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지난 정책의 행보 속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면, 기존 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경제 문제의 해결에 주력해야 하는 도정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미래산업 육성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치우쳐 있는 성장전략의 내용을 재검토하고 미래 산업의 기틀을 세우는 전략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시기이다. 제주도의 고유한 지리적·산업적 특성을 감안하지 못한 성장전략이나, 중장기 로드맵보다 정권 취향에 맞추어 진화하는 발전 과제들이 제주 산업의 구조적 문제들과 서로 얽히면서 더욱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도정의 성장전략은 AI, 그린에너지, 항공우주 등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제주의 산업 기반과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이다. 이들 산업을 제주의 미래 산업으로 키우려면 척박한 제주의 산업 생태계 토양을 먼저 개간하면서 자생력을 갖춘 미래산업의 씨앗이 발굴되어 뿌려져야 한다. 산업 생태계 조성이 힘들다 보니 도정은 개발 제품의 도내 보급에 주력하는 방식으로 민생 지원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유통제품 보급 중심의 정책은, 도내 전기차 보급 확산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산업 육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전기차 도입 초기에 제주도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기차 보급 기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제주도는 보급 기지의 장점을 활용하여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했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만약 당시에 제주도가 전역을 전기차 보급의 실험공간으로 제공하는 대신에 자율주행 전기차 테스트베드와 같은 틈새 분야를 전략적으로 확보했다면, 지금쯤 제주는 국내 최고의 전기차/자율주행차 실증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의 기존 산업에 접목하여 미래 성장 산업을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기에 보다 파격적인 자세로 미래 신산업을 발굴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국가적 핵심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타 시도에 의한 선점이 미진하여 정책적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틈새형 미래산업 분야를 발굴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AI 제조/서비스 실증, AI 기반 테스트베드, AI 제품·서비스 표준 등이 대표적인 후보 중 하나이다. 제주도가 AI 산업 기반은 취약하지만, AI 서비스를 활용한 각종 실증 및 인증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은 해볼 만하다. 제주도정이 법제도 신설과 각종 인프라의 구축을 통해 각종 실증이 자유로운 공간을 구축하고 지역 인재 공급 기능을 점차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면, 도내에 데이터, 산업, 기업, 인재, 돈이 몰리는 시기를 낙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제주도정이 지역 공정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을 기회로 삼아, 미래산업의 씨앗이 뿌리내릴 토양을 다지는 데 나서야 할 시점이다. 흘러가고 있는 골든타임을 더 이상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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