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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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리 하천리 성읍1리 성읍2리 가시리 세화1리 세화2리 세화3리 토산1리==제주시정보화마을==
영평마을 저지정보화마을 상명정보화마을 섬머리도두마을==서귀포시 정보화마을==
월평화훼정보화마을 상예정보화마을 무릉도원정보화마을 수산정보화마을 알토산정보화마을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제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열녀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저희 신촌리는 원당봉으로부터 시작되며 넓고도 길게 쭉뻗은 '진드르'는 신촌의 첫관문으로서 답답하고 찌든 도민의 마음을 확트이게 합니다. 저희 마을은 특별히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닭머루와 여름철 냉용천탕으로 유명한 큰물(大水)이 있고 제주시와 근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도시 근교 농업지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여름철 신촌리민들이 정성들여 가꾸어 내는 진드르 수박, 겨울철 여러분의 식탁을 푸르게 할 수 있는 배추 등의 재배 단지이기도 합니다.
신촌은 여러분들과 더불어 새천년을 이끌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신촌을 꼭 방문하여 주십시오. 환영합니다.
제주시 삼양(三陽)동과 근접한 마을로 일주도로측 국도변에 접하고 읍소재지인 조천리에서는 1.5km 서측에 위치하고 있다.
| 세대수 |
인 구 | 면 적(ha) |
||
|---|---|---|---|---|
| 계 | 남 | 여 | ||
| 2,189 | 5,176 | 2,673 | 2,503 | 769 |
동(東)으로 죽도(竹島)를 한계로 조천리와 분경계(分境界)가 되어서 와흘리하(臥屹里下)까지 되고 조천상(上) 양천동(梁泉洞)이 경계로 되어 지번 1번으로 되고 있다.
서쪽은 원당봉을 분할하여 제주시 삼양동과 경계를 삼고 있어 본읍의 농지 중에서 대표적 조건이 구비되고 있다.
하천은 종인천(宗仁川) 문서천(文敍川)이 있는데 냇물이 고이지 않고 강우량이 심한때는 냇물이 줄기차게 흐르나 그것도 비가 그치면 일시적이 된다.
지형은 고저의 차이가 있으나 부락이 해변가에 군집되어 있기에 주거환경에는 지장이 없다.
<사회적 배경과 자연환경 >
신촌마을 하면 우선 진드르(속칭 진드르)와 원당봉을 상기하게 되며 열녀의 정절애향(愛鄕)의 마을로 인상깊은 곳이기도 하다.
북제주군의 초입(初入)마을 신촌으로 들어서면 국도로 연변에 봄이 오면 벚나무들이 꽃망울을 부풀리고, 가을이면 가지가지의 국화들이 피워내는 향기가 오가는 행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국도 남쪽 북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은 예부터 진드르라는 명명(命名)을 잇고 있는데 제주도에서도 드물게 넓고 긴 평야이다.
그런 이유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던 시대에 비행장 후보지로 선정되었던 바도 있다.
지금은 원예작물 단지로 되어있다. 동시에 제주시와 북제주군을 경계로 이루는 원당봉은 신촌의 유일한 맷부리다. 더구나 신촌리는 1300년 고려 충렬왕 26년에 제주를 동서 도현으로 설촌당시 현촌이였기도 했다. 신촌리 설촌시대는 확정하기 어려우나 현촌 설치의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 약 650-700년 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애당초 국도변 위로 인가가 있었으나 물이 좋은 곳을 찾아 해안포구가로 이주했으며 큰물(大水)가에 새 취락을 형성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 특성은 해안포구에 있는 샘(湧出水)은 용출량이 많고 사시절(斜視節) 끊기는 일이 없어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촌사람들에게 영원한 복음(福音)마음의 고향으로 남아갈 것이다.
또 어부들은 멀리 출어할 때 이 포구에서 재회의 언약을 남겼으며 귀향할 때 까지 그 언약을 간직하고 뱃일의 고달픔을 달랬다고 한다.
그 외 신촌은 유학(儒學)의 전통 마을로 지금 향회재현(鄕會再現)마을이 되었다. 지난 해 북제주군으로부터 이러한 마을로 지정을 받아 옛 전통과 현대의 삶을 슬기롭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