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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읍 고 상은 가옥
작성자 관리자 조회 1,713 회

지 정 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 72호
지정년월일 : 1979년 1월 23일
소 재 지 :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862


이 가옥은 현 거주인 고상은씨의 증조부가 고종 16년(1879)에 건립 했다고 전한다. 집은 한일자형 우진각지붕의 초가로서 안거리(안채)와 목거리(헛간채)가 ᄀ자 모양으로 배치 되었으며 올래(좁은골목으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우영(텃밭)등의 외부 공간은 거의 두지 않았다.
이 집은 원래 대장간으로 쓰였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평면의 간살은 아마도 후에 시설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안거리는 작은 방이 있는 3칸집이고 목거리에는 정지간(부엌)이 만들어 졌는데 이것 역시 20세기 중반에 시설된 것이다. 대장간으로 쓰이던 당시의 집의 간살은 상방과 정지간 및 작은 구들이 없는 통간으로 되었으며 대장간 가운데에는 땅에 기둥 뿌리를 묻는 생기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가장 원로적인 경사진 대들보를 얹었었다.






문화재청 자료 발췌
고 상은 가옥 [高相殷家屋]
예전 정의(성읍) 고을에서 대장간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하는 집이다. 19세기 후기에 지었다고 하며 고평오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9호) 맞은편 면사무소 관원들만 사용했다던 ‘남문통’이란 우물이 있던 앞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길은 객사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길가로 정의 고을의 중요한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대장간이 어느 마을에서나 그 마을의 중요한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건물은 대문이 없고 안채(안거리)와 모로 배치한 모커리로 ᄀ자형의 단순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앞에 두고 남향으로 서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상방)가 있고 오른쪽에 헛간과 작은 방(작은 구들)이 왼쪽에 안방(큰 구들)과 곡식을 두던 고팡이 각각 앞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평범한 집으로 개조되었지만 예전에는 대장간 가옥구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을 들어선 바로 왼쪽에 있는 모커리는 2칸 집으로, 앞에서 볼 때 오른쪽을 헛간, 왼쪽을 부엌(정지)으로 꾸몄다. 부엌은 20세기 중반에 시설한 것으로 보인다.

텃밭(우영)과 같은 공간이 없이 단촐한 집으로 대부분이 개조된 것이지만, 대장간으로 쓰이던 건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연구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설명 : 성읍고상은가옥(城邑高相殷家屋)
이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69호인 성읍(城邑) 고평오(高平五) 가옥과 이웃하여 있다. 곧 고평오 가옥 이문간(大門間) 길 건너 맞은쪽의 예전 관사전용의 음료수 ‘남문통 ’바로 앞에 단출하게 서 있다.
이 가옥은 자그만 안거리(안채, 17평)와 ᄀ자로 놓인 모커리(7평)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문(大門)도 없고 우영(터앝) 같은 공간도 전혀 없다. 19세기 말엽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자그만 가옥의 특색은 예전에 대장간으로 쓰였다는 점에 있다. 안거리(안채) 건물 자체가 대장간이었으므로, 안거리 평면의 간살은 아마도 나중에 시설된 것으로 보인다. 안거리는 작은 방이 있는 3간(間)집이고 모커리에는 정지간(부엌간)이 만들어졌는데, 이 정지간 또한 20세기 중반에 시설된 것으로 보인다. 안거리의 경우, 대장간으로 쓰이던 당시의 가옥구조는 상방(대청마루)과 작은 구들 및 정지간의 구별이 없이 통간으로 이루어졌고 대장간 한가운데에는 땅에 기둥 뿌리를 묻는 생깃기둥(상기둥)을 세우고 경사진 대들보를 얹었던 원초적인 가옥형태였으리라 추측된다.

이 가옥은 객사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길가에 세워졌다. 이 길은 예전의 정의고을로서는 중요한 도로다. 이 가옥의 이웃인 객사 남쪽 네거리에 ‘노다리방죽 ’이라는 못이 있고 더구나 이 가옥 바로 맞은편에 관리들이 사용하였던 ‘남문통 ’이란 우물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자취가 남겨졌음은 주목할만 하다. 대장간은 어느 마을에서든 그 마을의 요소에 위치한다는 점과 부합된다. 우영(터앝) 같은 공간도 없이 단출하게 지어진 이 가옥은 민가로서의 가치보다는 대장간으로 쓰였던 유다른 건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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