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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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화훼정보화마을 상예정보화마을 무릉도원정보화마을 수산정보화마을 알토산정보화마을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본 리는 원래 광령리에 속해 있었으나 자종동, 장전동, 하귀1리 광동이 통합되면서 분리되었다. 최초 설촌 연대는 확실히 추정할 수는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0년(1361) 행축에 송자종이라는 사람의 자식 삼형제가 육지에서 입주하였다. 부근에서 용출되는 3개소의 천연수와 광활한 농토를 근원으로 농경생활을 하다가 고려조가 망하고 조선 태종대에 와서 송씨가 몰락하여 폐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조선말엽 고종 17년 경신(1880) 진주강씨 입도조 진용 교위공 철의 13세손이며 가선대부상옥공의 손인 승윤공이 애월읍 유수암리(금덕리)에서 광령리에 이거했다가 고종 20년(1883) 현 광령3리 자종동에 정착했다.
그후 豊基秦 씨 및 제성씨가 입주 자종동을 설촌했고, 장전동은 조선 정조 22년 무오경(1798) 라주김씨 입도조 인충공의 12세손인 연택동이 애월읍 상가리에서 입촌했고, 조선 철종 원년(1850) 제주양씨 중시조 중낭장공 홍의 17세손 우교, 우행 형제분이 제주시 노형리에서 광령1리에 입주하였다가 우교공의 자 붕환, 전환 형제분은 철종 7년(1856)에 우행공이 손 제혁, 제범 형제분은 고종 12년(1875)에 각각 입촌한 후 그외 제주고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주함으로써 설촌되었다. 하귀1리 광동은 고종 18년 행이(1881) 진주강씨 보익공이 애월읍 상귀리에서, 고종 19년 임오(1882) 김해김씨 중시조 좌정승 만희공의 19세손 사헌공 인권이 애월읍 유수암(금덕)리에서, 광무 4년 경자(1900) 밀양박씨 입도조 홍문관 정자공 후신이 12세손 문혁공·13세손 계윤공이 애월읍 수산리에서 각각 입촌했다. 이외 제주고씨, 연주현씨, 여산송씨, 풍천임씨 등이 입촌함으로써 설촌되어 이 3개동이 통합되어 본 리 발전의 근원이 되었다.
◈ 리정(里政) 발전과정
조선말 일정시대 최초 광령리에 속하여 서광(西光)이라 부르다 광령(光令) 1·2구(區)로 되면서 광령 2리 유신동(有信洞)과 더불어 광령 2구 자종동(自宗洞), 장전동(長田洞)이라 하였다. 1948년 4·3사건으로 인하여 하귀리(下貴里), 제주시 외도(外都) 등지로 소개(疏開)했다가 1949년 시국안정으로 광령1·2리, 고성(古城), 하귀 1리 광동(廣洞) 주민들이 본리 자종동(自宗洞)에 집단재건하므로써 대부락을 형성하여 초등학교 및 경찰관 파견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1951년 광령 1·2리, 고성리 주민이 각각 재건복귀하고 본리에는 자종동, 장전동 하귀리, 광동 주민이 현 자종동에 영주하므로써 1956년 광령 3리로 분리되고 1962년 본리 하동(下洞)에 복구주민(復舊住民)이 10여호가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49년 광령리, 고성리, 주민 집단재건
1950년 광령초등학교 개교(2학년)
1953년 광령초등학교 광령1리로 이설
1956년 광령리에서 광령3리로 분리 향사일동 신축(15평)
1961년 서울 용산 후암2동과 자매결연
1962년 하동 10호 복구 입주
1963년 중산간 도로 개설
1968년 농업진흥공사 제주지사와 자매결연
1972년 상수도 시설, 중산간 도로 확장
1973년 공설묘지 조성(500평)
1974년 전기 가설
1975년 새마을회관 건립(30평)새마을금고 창립
1976년 고구마 저장고 시설(15평)시내버스 계통
1977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도대표 참가(공로상 수상)
1978년 새마을창고 건립(50평) (대통령 각하 하사금)
1982년 개인 전기 가설
1983년 중산간 진입로 확장 포장(450m)
1986년 범죄 없는 마을 선정
1987년 새마을금고 1억 돌파
1991년 새마을회관(리민회관, 증축)(2층 60평)
1992년 마을안길 군도 승격·확장 포장,농협창고 신축
1995년 노인회 창립
2025년~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