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지명유래

비신의 골'에서의 유래 게시물 상세보기 제목, 작성일, 조회, 작성자, 연락처, 내용, 첨부를 나타낸 표입니다.
제목 비신의 골'에서의 유래
작성자 관리자 조회 1,222 회

유신동은 10세기 말엽(고려 중엽) 현재 이 마을의 동남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비신의 골'(非信依洞 : 믿을 수 없는 애통한 마을)에 거주하던 유목민들이 씨족생활에서 부족생활로 전환할 무렵에 집단이주하여 정착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같은 집단이주는 다음가 같이 몇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1) '비신이골'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원주지보다 농토가 훨씬 비옥하고 기후조건이 한층 온난할 뿐만 아니라 집단생활에 충족한 급수원인 '거악대(去惡垈)물'이 있어 자연적, 물리적, 입지조건이 양호한 환경을 찾아 왔으리라는 것이다.
2) '비신의 골'에는 다음고 같은 애통한 사연의 전설이 구전되고 있는데, 위와 같은 자연적, 물리적 생활환경이 양호한 곳으로의 이동설과 함께 사회심리적 문화적으로 집단이동이 불가피했으리라는 전거(典據)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옛날 '비신의 골'의 한 집안에 '매고할망'이 살고 있었다. 수렵으로 생활을 이어갈 당시 매고할망을 자극히 짝사랑하던 무지럭 총각이 이웃에 살았는데 하루는 이 총각이 매고할망의 남편과 함께 사냥을 갔다. 총각은 이 여인을 편취할 목적으로 사냥 도중 이 여인의 남편을 사냥터에서 살해하여 그 시체를 파묻어 은닉한 다음 혼자서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총각은 이 여인에게
'오늘 사냥하다가 갑자기 맹수를 만났는데 자기는 겨우 도망쳐서 살아 돌아왔으나 당신의 남편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안했으니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몇 일동안 이웃 사람들은 이 총각은 지로인(指路人)으로 하여 여인의 남편을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 없어 결국 체념하게 되었다.
그러자 무지럭총각은 그 여인을 보살펴 준다면서 계속 끈질기게 접근하여 마침내 강제로 자기의 아내로 삼고 동거하면서 일곱아들까지 낳았다.
그런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그 사냥꾼(무지럭총각)이 마당을 보며 혼자서 히죽히죽 웃는다. 남편이 이상하게 혼자서 웃는 것을 본 그 여인은 남편에게 '무엇을 보며 혼자 그렇게 웃느냐'고 묻자 남편은 이제는 괜찮으리라 생각하여 '내가 사냥터에서 당신의 본남편을 죽였을 때 그 상처에서 뿜어대던 피가 마치저 마당에서 솟는 물거품과 같고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같이 웃으면서
'그렇습니까, 참으로 당신은 훌륭한 남편입니다. 만일 본남편과 함께 살았었다면 많은 아들을 낳을 수도 없었을 것이요 이처럼 행복한 생활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일단 남편의 마음을 달래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다시는 그랬던 일을 기억해서 영원히 없애 버립시다. 그러기 위해서 그 시체의 뼈라도 남아 있을 터이니 다시 파내어 뼈까지 모두 태워 없애버립시다'고 제안을 하였다 남편은 그 여인이 제안에 즐거히 응하여 비가 개인 후 그 시체가 묻힌 곳까지 아내와 함께 갔다. 그 여자는 본남편의 시체가 매장되어 있는 곳을 확인한 다음 '오늘은 일진이 좋지 못하니 오늘 이 일을 처리하면 우리 집안과 자식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다음에 알맞은 날짜를 다시 택하여 처리합시다.'하고 그날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 여인은 남편 몰래 밤 사이 매장한 곳에 혼자 가서 본남편의 시체를 파내어 치마폭에 뼈를 담고 관가에 가서 증거물과 함께 남편의 살인을 고발하였다.
그래서 살인자인 남편은 대살당하고 그 여인은 자기가 낳은 아들 일곱도 더러운 핏줄이라 하여 모두 집에서 쫓아내는 한편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고, 엎드려 땅을 살펴볼 수도 없다'하여 자신이 사는 가옥의 바깥벽을 온통 돌담으로 쌓아 그 속에 들어가서 영원히 나오지 않으니 일러 '매고할망'이라 하였으며 그곳ᄋᄅ '매고무덤'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일대를 '비신의 고을'이라 하였다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자 이 고을 사람들은 그곳보다 조금 북쪽에 있는 '유신동'으로 집단이주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자연적, 물리적 환경이 이동시기라면 후자는 사회심리적 문화적 집단이주 요인으로 착안된다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비신의 골'주변에서는 대나무가 산재해 있고 인접에는 '정연(井淵)'이라는 샘이 있으며 또한 '절왓'이 있는데 그 자리에는 옛날 기왓장이 많이 널려 있고 '움집터', '무근집터' 등의 지명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정시대에 외도주재소(外都駐在所)(현 외도지서)에서 '매고무덤' 유적지를 발굴 조사한 바 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아내지 못하였던 접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고증한 물적 증거 유실되어 버린 듯 하며 연대가 매우 오래된 일이었을 것을 추정된다.

페이스북 공유 트의터 공유

AltStyle によって変換されたページ (->オリジナ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