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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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마을 저지정보화마을 상명정보화마을 섬머리도두마을==서귀포시 정보화마을==
월평화훼정보화마을 상예정보화마을 무릉도원정보화마을 수산정보화마을 알토산정보화마을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약 380여년전에 도두지방에 이씨와 사수 지방에 문씨, 이호 지방에 김씨가 이주되어 도두사수목포라 칭하였으며, 점차 공동부락으로 집단되어 동부, 중부, 서동, 사수동, 다호동, 자포동, 오도롱 등 7개동으로 형성되어 향장과 경민장이 행정을 관할하였다.
1931년에 도두리가 1,2로 분리되고 1946년 8월에 1,2로 개편되어 오던 중 1943년 3월에 도두2리 약 150세대가 군용 비행장 신설로 이주되었고 0.2km2의 옥토의 상실로 많은 영세민이 발생하였음. 1948년 4월에 발생한 4ᆞ3사건으로 인하여 약 200여채의 가옥의 "공비"로 인하여 약 600명의 이재민의 발생하였으나 정부의 지원으로 이재민 복구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 후 1955년 9월 1일 시제실시에 따라 동년 11월 30일자로 제주시 동명칭 및 관할구역 확장조례로서 도두 1,2동으로 개편되었고, 1966년 1월 1일자로 1,2동을 단일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었으며, 현재 2개 법정동, 4개 자연마을, 6개통 23개반에 이르고 있다.
도두1동 마을은 지금부터 370여년전 광산이씨의 조상이 설촌하였다는데 이 마을의 포구주변에서 솟아나오는 "오래물", "지름물", "막은물" 등의 자연조건과 도두봉이 바다바람을 막아주어 번창하였으며, 지금부터 340여년전 현재 도두1동에 가장 많이 사는 김해 김씨의 조상 김명덕이 제주시에서 옮겨와 뿌리를 내렸고, 그 후 부씨가 정착하여 이 마을에서 6~7대를 살았으나 현재는 그 자손들이 모두 떠났으며, 안씨도 정착하여 6~7대를 살아오고 있다.
도두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그리고 도두봉과 도두 마을의 이름이 같은 것으로 보아 도두봉의 이름을 본따서 마을 이름을 도두라고 하였거나 아니면 도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도두봉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학설 중 대표적인 설은 도두는 예전에 도두(島頭)/섬머리"라고 하였다는 데서 "섬의 머리"마을이라는 뜻이라는 설과 "한길의 머리"라는 설, "도+돌(石)" 혹은 "돋은(솟아난)"의 뜻이라는 설(배우리)이 발표되엇으며, 최근에는 "도(道)+도리"의 표기에서 도두리로 정착하였다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